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울 요제프 괴벨스 (문단 편집) == 개인적인 특징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파울 요제프 괴벨스.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02-01888A,_Joseph_Goebbels.jpg|width=100%]]}}}|| [[소아마비]] 때문에 다리가 굽는 신체 장애가 있었다. 이는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박사 학위만큼이나 잘 알려진 개인적인 특징이다. 이는 어려서는 물론 커서 나치당원과 장관에 이르기까지 정적들의 공격대상이었고 괴벨스 자신도 장애를 잊지 않았다. 군대는 면제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는 않고 대학에 다닐 때 징집된 적이 있다. 현역은 아니고 군대에 비품을 공급하는 보훈 단체에서 행정병으로 몇 달 일하다가 [[높으신 분]]이 괴벨스의 꾀죄죄한 외모를 보고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유대인 초등학교 교사[* 당시 유럽에는 유대인 마을이었던 게토안에 유대인 전용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는데 초등학교 역시 그 전용시설 중 하나였다.] 엘제 얀케와 결혼을 고민할 때도 여자 쪽에서 괴벨스의 다리 장애가 유전이 될까 봐 괴벨스는 엘제 얀케의 어머니가 [[유대인]]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대판 싸우는 원인도 되었고 나치당 관구장이 될 때도 말이 많았고 장관으로 출세했을 때도 정적들은 군 복무 경력과 신체 장애를 빗대 "방구석 병사", "빼어난 외모의 게르만 청년"이라 비꼬거나 '''"절름발이 악마"'''라는 멸칭을 붙였다. 장관이 되고 나서는 다른 나치당 간부들만큼 흥청망청은 아니어도 꽤나 해먹었다. 우선 유대인 부호를 협박해서 땅을 헐값에 가로채고 괴링의 양해를 받아 [[숲|산림]] 구역에서 법을 어기고 주건물 방 개수만 21개, 욕실만 5개짜리 별도의 영화관과 연회홀이 딸린 저택을 300만 제국마르크를 들여서 만들었다. 내부 장식도 가구나 식기는 물론이고 하나에 3만 마르크나 하는 [[루이 16세]]풍 [[양탄자]]를 까는 등 실내 장식에도 펑펑 써댔다. 물론 여기엔 재벌 출신 마그다의 취향도 한 몫 했다. 이 대부분의 돈은 당연히 영화계의 뇌물이나 선전부 예산을 삥땅쳐서 빼돌렸다. 나치당 베를린 관구장 시절에도 상당수의 베를린 관구 당예산을 빼돌려서 소송비용이나 여자들 만나고 다니는 데 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